<이미지 출처 : 뉴스뱅크이미지 by 뉴시스>

2PM의 리더인 박재범군의 한국비화발언과 관련하여 결국 탈퇴를 선언했습니다.
근래 걸 그룹들의 무대로 변해버린 가요계에 그나마 파워와 실력을 갖췄다는 몇 안되는 아이돌그룹, 특히 남성 아이돌그룹 중 단연 돋보이는 팀인 2PM. 10월에 2집 발매를 앞두고 있었는데, 갑자기 터진 한국비화 발언으로 인해 홍역을 치르더니 결국 탈퇴로 마무리가 되었군요.
하지만, 그의 탈퇴 선언은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몹시 실망스럽습니다.

그의 논란을 다시보자.
먼저, 2005년 소셜 네트워킹 My Space에 올린 글로 발단이 되었다.
국적이 미국인 박재범의 경우, 연습생 시절 한국인들에 대한 비난을 올려 파문이 일었다. (누군지 모르지만 무려 4년전의 글을 찾아낸 것이 참 대단해 보인다. 일각에서는 라이벌 기획사가 의도적으로 흘렸다는 소문도 있다.믿거나 말거나지만..)
제2의 유승준이라 불리면서 네티즌들의 파상 공세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일부 2005년의 경우, 박재범의 나이는 20살이었다는 점, 공식사과문을 기재했다는 이유로 동정론을 얻었었다.
일부 기획사의 대리사과로까지 의심받게 되었고, 팀원들의 리더 감싸기까지 겹치면서 네티즌들의 분노는 극대화 되었다.

여기서 일부 여성팬들이 너무 마녀사냥을 하는 것이 아니냐라고 한다.
하지만, 몇가지 짚고 넘어가야한다.

일단, 그의 태도다.
나 역시 어린 나이에 그럴 수 있다고 생각이 든다. 왜냐 나도 지금 우리나라 현실을 비방하고 때론 한국인들은 아직 문화 후진국이다라고 비판을 한다. 그런 점에서 비난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한국인이 아니다. 현재 국적상 미국 국적이다. 그렇지만 본인은 한국의 피가 흐르지 않는가?물론 이민 2세다 보니 오히려 미국인에 가깝다. 흔히들 바나나라 불리는 바로 아시안 미국인이기 때문에 그런 비난은 자제를 했어야 한다. 그리고, 사실 아쉬운것은 그들만의 세상으로 여기고 My Space에 글을 올렸다는 것이다. (사실 한국의 네티즌들은 못하는게 없다. 네티즌 수사대가 괜히 있겠는가..)

좋다. 이점에서 어린 나이에 그럴 수 있다고 이해를 해 보자.

그럼 이런 문제가 불거진 이후의 그의 태도다.
먼저, 직접 나서서 공식 사과를 왜 못했는가?
기획사의 말처럼 한국말이 서툴러서? 공개적으로 나서기가 힘들어서?
만약 사태가 시발한 시점에 나서서 적극적으로 공식사과를 했다면 이정도로 네티즌들의 분노를 샀을까?
어쩌면 네티즌들의 동정론이 좀 더 생겼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더욱 실망스러운 것은 바로 오늘의 태도다.
공식사과 없이 결국 팬카페에 사과문만 덜렁 올리고 탈퇴를 선언하고 자기네 나라로 돌아갔다.
시애틀의 한 교민께서 박재범군의 한국사랑에 대해 글을 올려화제라고 한다.

정말 부모님의 나라 한국을 사랑했다면 과연 이런 행동을 할 수 있었을까?라고 묻고 싶다.
그리고 과연 정말 사과할 맘이 있었다면 팬이든 대한민국 국민에게 차라리 떳떳하게 사과를 하고 그런일이 없도록 하겠다라고 밝혔어야 했다. 그리고 나서 자숙을 하겠다라고 했어야 했다.

작자의 맘은 참으로 실망스럽다. 평소 짐승돌이라고 불릴정도로 남자다움을 강조하던 그룹이었기에 더욱 그렇다.
오히려 남자답게 잘못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과연 네티즌들의 분노가 이렇게 커졌을까?

그리고, 도망가듯 이렇게 떠나는 것이 한 그룹의 리더로써 책임감이 있는 것일까?
나는 차라리 재범군이 공식사과를 하고, 자숙의 의미로 한국 역사와 관련된 봉사활동등을 하면서 부모님의 나라 한국에 대해 더욱 애착을 갖도록 했으면 하는 기대를 했었다.
그리고,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고 이겨내어 멋지게 컴백하는 것을 기대했었다.
그래서인지 더욱 실망스럽다.

일부 네티즌들은 이렇게까지 마녀사냥을 했어야 하는가라고 말한다.
하지만, 잘못한 것은 잘못한 것이다. 마녀사냥이 아니라고는 하지 않겠지만, 그와 그의 소속사의 행동은 참으로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추가의 글)
회사 여직원들과 이야기를 하던중, 재범군의 탈퇴에 지못미라고 말할 정도로 열을 내면서 옹호하는 분들이 많더군요. 여자분들 중 대다수가 옹호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일부 여직원들은 글을 잘 봤냐고 그럴 수 밖에 없었던 내막이 있었다고까지 옹호를 하더군요.
좋습니다. 그럼 그렇게까지 내막이 있었고 힘든 시기가 있었다면 왜 떳떳하게 나와서 사과나 사죄의 메시지 혹은 행동을 못했을까요? 이런 말을 하자 또 옆에 있던 여직원들은 그만의 방식이라고까지 옹호하는군요. 그런 그만의 방식이 잘못되었고 실망스럽다는 것입니다. 사실 저도 재범군을 좋아했던 사람중에 하나입니다.





2009/09/08 13:56 2009/09/08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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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만든 그저 그런(?) 노래들이 가요계 챠트를 휩쓸자, 가요계에서는 천박하다는 둥 그저 그런(?) 노래가 공들여 만든 노래보다 못하다는 등 하는 기사가 여기저기서 들리더군요.

많은 분들이 즐겁게 보신 무한도전의 듀엣가요제의 노래들이 과연 가요계에서 말했듯 그저 그런 노래인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미지 출처 : 듀엣가요제 음반 표지>

그건, 가요계가 스스로의 무덤을 파는 발언이라고 밖에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먼저, 무한도전의 듀엣가요제 취지가 무엇인가?

불법 다운로드를 근절하여 가요계를 살리겠다는 취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침체되어있다고 하는 가요계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자 유쾌한 음악과 무한도전의 전통(강변북로가요제^^;;)에 맞춘 컨셉을 잡아 실행에 옮긴 것입니다.

늘 그렇듯 리얼 버라이어티 답게 많은 시간을 직접 연습하고 배우면서 하는 것을 통해 노래라는 것이 쉽게 나오지 않음을 잘 보여주었습니다. 작곡가들의 노력과 가수들의 피나는 연습 그리고, 곡을 쓰는 데 필요한 산고의 고통, 표절의 유혹 등 다양한 내용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만큼 쉽지 않은 것이 바로 노래를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잘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가수들의 대단한 노력이 바탕이 된다는 것도 보여주었습니다. 예로, 무한도전 멤버들이 아무리 연습을 해도 사실 가수들보다 못하는 걸 보여줌으로써 가수가 쉽게 탄생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것을 잘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참석한 가요계 종사자들이 정말 천박한(?) 노래와 그저 그런(?) 노래를 만들었는가?
YB, 타이거JK, 노브레인, 윤종신, E-TRIBE, 안영민, 에픽하이 등 정말 대단한 실력파 가수와 작곡가들이 모여서 만든 노래입니다. 과연, 그들이 아주 우습게 여기고 아주 쉽게 여기고 이 노래들을 만들었을까요? 다소 과장된 재미를 위한 코드를 설사 넣었다고 하지만, 개인들의 네임밸류와 자존심이 있는데 그리 쉽게 생각하고 만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거기다 냉면 같은 곡은 이미 기존에 다른 가수에게 주기 위해서 애써서 만들어 놓은 곡이라고 밝혀지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설사 그들이 건성(?)으로 만들었다고 치더라도, 이 것이 문제가 될 수 있는가라는 것입니다. 대 히트곡들 중에는 채 5분이 안되어 악상이 떠올라 만들어 지는 경우도 있고, 실제로 많은 히트곡들이 순간의 악상에 의해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거기다 에픽하이가 말했듯이 보통 한 앨범을 만들때 100여곡을 만들어 본다고 했습니다. 그 중, 엄선해서 내어 놓기도 하고 그 후 내어놓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미리 만들어 놓은 곡들 중에서 선택된 곡들도 다수 포함이 되어있습니다.


그렇다면 가요계가 비난을 보내는 것은 결국 그들의 얼굴에 특히 가요계를 위해 열심히 뛰는 여럿 사람들에게 욕을 하는 것 밖에 되지 않습니다.

1여년을 준비해서 내어 놓은 앨범도 채 5만장 팔기 쉽지 않은 세상에 예능 프로그램에서 나온 노래가 5만장을 팔고 가요챠트에 상위에 랭크 되는 건 참으로 천박하다라고 생각을 한다는 기사가 났더군요.

음악방송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과연 %인지 아십니까?
그리고, 과연 10만장 이상 팔린 유희열, 김동률 같은 가수들이 설 수 있는 음악 프로그램이나 환경이 존재하는 가라는 것도 생각을 해 보셔야 할 것입니다.

음악방송을 보면 정말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손발이 오그라드는 그저 상업적인 노래들이 다수 차지합니다. 그리고, 요즘 음악 시장이 과연 누구를 타겟으로 하는가도 중요하죠.
현재 음반을 실제 구입하는 연령층을 조사하면 20대 중후반에서 30대 중반까지의 연령층이 실제 구입을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현재 국내 음악 시장은 주로 10대들을 위해 10대들의 등용문처럼 여겨지도록 10대들을 내세운 아니면 비주얼을 내세운 가수들이 대다수 입니다.
바로 거대 엔터테인먼트화 되면서 다양한 주제와 장르의 음악이 방송을 통해 알려지는 경우가 드물어 졌다는 것입니다.
노브레인이나 YB밴드의 경우 실제 방송을 출현하는 경우가 과연 얼마나 될까요?
올해 장기하와 얼굴들이라는 그룹의 음반이 10만장 가까이 팔린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되나요?

이처럼 음악시장이 그저 얼굴 비추다 영화나 드라마로 전향해도 되는 혹은 이쁘고 잘생긴 사람들의 등용문 정도로 생각하는 현 시점에서 과연 대작이라는 음반이 나올 수 있을 까요?

그리고, 대작이라 불리는 음반들에 대해서는 음악방송에 나오지 않아도 10만장이상의 판매고가 올라가는 것은 왜 그럴까요?

그 천박하다고 말씀하신 가요계종사자분은 그저 가요계를 돈으로 평가를 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더 천박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마지막으로 무한도전 듀엣가요제의 음악이 더 인기 있는 이유는 바로 그 돈을 본인들이 가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저 돈벌이에만 눈이 먼 가요계에 일침을 가하듯이 잘 만든 음반은 돈주고 구입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고, 투명하게 어디에 쓰이는지 아는 이상 사람들이 더 구매를 하는 것입니다. (사실 개인적으로 한 10만장 찍어서 팔았으면 합니다.)

천박한 예능프로그램에서 만든 천박한 노래가 천박한 가요시장에 단비를 내렸다면 그들은 그 천박한 노래에 왜 열광하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할 것이고, 천박한 시장에서 천박한 음반임에도 천박하지 않다고 평가 받는 이유 또한 본인들이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덧글:
참고로 2009년 6월25일부터 약 2주간 음반판매량 1위가 마이클잭슨의 앨범이 차지 했습니다.
과연 진정 천박하지 않은 음반이 뭔지 한번 생각해 보시는 것이 어떨지.....


2009/07/21 14:12 2009/07/21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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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25일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은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그가 떠난지 벌써 10일이 지났습니다.

세계 각국의 팬들이 그를 추모하고 있고, 그가 떠나자 심지어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이 생겨 자제를 당부하는 기사들이 각국에서 나오고 있다고 합니다.

마이클 잭슨의 공식 홈페이지였던 마이클잭슨닷컴은 추모의 글들이 연일 계속 올라오고 있습니다.

마이클 잭슨 그는 누구인가?
위키백과를 보시면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마이클 조지프 잭슨(Michael Joseph Jackson, 1958년 8월 29일 ~ 2009년 6월 25일)은 팝의 황제라 불리는 미국의 가수이다. 1958년 8월 29일 미국 인디애나 주 게리에서 클라리넷 연주가였던 어머니와 그룹 팔콘스(The Falcons)에서 기타리스트로 활동했던 아버지 사이에서 9남매중 다섯번째로 태어났다.

5세때부터 친척들과 형제들로 이루어진 '잭슨 파이브(The Jackson 5)'와 후의 '잭슨스(The Jacksons)'에서 활동했고, 1979년 처음 솔로앨범 《Off the wall》을 발표했다. 그후 《Thriller》(1982), 《배드(Bad)》(1987), 《데인저러스(Dangerous)》(1991), 《히스토리: 과거, 현재, 미래 1권(HIStory: Past, Present and Future, Book 1)》(1995)등의 앨범을 출시하였다. 이중 《Thriller》는 전세계적으로 1억 4백만장이 판매되는 대성공을 거두었으며 그의 앨범들은 현재까지 7억 5천만장 이상의 판매를 기록했다. 또한 그래미 시상식에서 13개의 상을 수상했다. 또한 노래 〈빌리 진(Billie Jean)〉은 '문워크(Moon walk)'라 불리는 안무를 유행시킨 히트곡이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보컬 트레이너 중 한명인 세스 릭스에게 트레이닝을 받았다.

2001년로큰롤 명예의 전당 에서 <공연자>(performers) 부문에 올랐으며, 2002년에는 작곡가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1993년도 부터 아동 성추행과 관련한 여러 기소가 있었으나, 대부분은 무죄로 판명되었다. (판례1:2005년도에는 2003년도부터 시작된 10개의 기소가 증거 불충분으로 종결되었다.)

2009년 7월 8일부터 2010년 2월 24일까지 영국 런던 O2 아레나 등에서 콘서트 'This Is It'를 공연할 예정이었으나[1], 2009년 6월 25일(당시 만50세)에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

출처 : 위키백과


마이클잭슨을 추모하는 많은 인파로 인해 LA 경찰 당국에서는 통제에 나서야 할 정도라고 기사가 올라올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그를 기리고, 그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많은 가수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던 그로 인해 많은 가수들이 퍼포먼스를 통해 그를 애도했습니다.
그리고, 무한도전의 김태호 PD는 마이클잭슨의 공연모습을 마지막에 담음으로써 그를 추모했습니다.

오늘 MBC의 특집 추모방송 "불멸의 라이브, 팝의 황제 마이클잭슨"이라는 제목으로 마이클잭슨이 생전 했던 콘서트의 실황을 녹화방송했습니다.
1992년에 있었던 마이클잭슨의 공연이지만, 지금 봐도 하나도 촌스러운게 없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 군요.

우여곡절이 많은 삶을 살았지만, 우리는 그를 팝의 황제라고 불렀습니다.
그 칭호가 가장 잘 어울렸던건 바로 그의 음악과 지금봐도 놀라운 퍼포먼스들.

팝평론가들은 그가 듣는 음악을 보는 음악으로까지 발전시켰다라고 할 정도로 마이클잭슨의 공연 모습은 지금봐도 놀랍고 흥분하게 만들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오늘 MBC의 추모방송을 보면서, 정말 1992년에 했던 콘서트라는 게 믿을 수가 없더군요.
우리는 당시 서태지와 아이들이 데뷔하면서 많은 문화적 충격이 왔고, 서태지와 아이들의 콘서트를 보면서 많이 놀랬던 그 시절이었는데, 마이클 잭슨의 공연은 더 놀랍고 신선한 충격입니다.
무려, 17년 전의 공연이 지금 보아도 절대 촌스럽거나 부자연스럽거나, 보기가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동시대에 열린 콘서트를 보는 듯했습니다.
그의 수많은 히트곡과 미성이 섞인 특유의 아름다운 라이브, 거기에 한 번도 눈을 돌릴 수 없게 만드는 그만의 퍼포먼스와 댄스.
정말 어릴적 마이클 잭슨의 문워크를 따라하기 위해 몸치인 제가 흉내를 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를 정도로 그의 무대는 열광적이었고, 살아있었습니다.

그의 짧은 50년 생이었지만, 그는 우리에게 많은 노래와 많은 변화를 주고 떠났습니다.
마이클의 콘서트 퍼포먼스는 지금 대한민국의 많은 가수들이 배워서 이용하고 있고, 그의 영향으로 많은 댄스가수들이 나타났습니다.

늘 음악은 들어야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모두가 즐거워하는 음악을 만들고, 세상에 많은 이야기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많은 후원을 하던 그의 모습은 우리나라의 부자들에게 많은 걸 깨달게 해줬으면 합니다.
MBC에서 추모특집 방송을 해서 너무 고맙다는 생각이 드네요

팝의 황제라는 칭호가 가장 잘 어울리는 사나이.
아니 팝의 신이라 불려도 손색없는 사나이.

그의 50년 짧은 삶을 애도합니다.


개인적으로 마이클잭슨이 죽은 6월 25일은 제 생일입니다. 아마도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2009/07/05 01:18 2009/07/05 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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